한때 세상을 뒤흔들었던 제7재해는 에오르제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각각의 인물들이 겪었던 제7재해를 5화에 걸쳐 돌이켜보겠습니다.
'두번의 출항'
돛을 활짝 펼친 배가 미끄러지듯 서서히 항구를 떠나갔다. 알피노와 알리제는 벼랑 위에 서서 아버지 푸르슈노와 함께 멀어져가는 배를 배웅하고 있었다. 그 배에는 그들이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할아버지 '루이수아 르베유르'가 타고 있었다. '정말 배가 떠났구나……' 점점 작아지는 배를 바라보며 오빠인 알피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한편 여동생 알리제는 우느라 빨개진 눈으로 흘깃 한번 쳐다볼 뿐, 오빠가 한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똑같이 생긴 쌍둥이였지만 할아버지를 떠나 보내는 태도는 전혀 달랐다. 오빠는 담담한 듯 현실을 받아들였고 동생은 소리쳐 울었다. 하지만 아담한 체구와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마도서를 품 안에 꼭 안고 있는 것은 똑같았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꼭 닮은 쌍둥이였다. '마법대학에 합격한 축하선물이라 하기는 뭐하지만, 너희 둘에게 선물이 있다. 이것은 두 권이 한 쌍인 마도서란다. 언젠가 분명 이 안에 적힌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날이 올 게다. 그때까지 둘이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 할아버지 루이수아가 떠나기 전날에 쌍둥이에게 선물한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책이었다. 두 권이 한 쌍인 마도서이며, 한 권만 가지고는 절대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샬레이안에서 제일 가는 현자라 불리는 루이수아답게 장난기 가득한 물건이었다. '고맙습니다. 조부님' 알피노는 도저히 열한 살짜리 어린아이 같지 않은 공손한 태도로 책을 받아 들었다. 반면 알리제는 여느 또래 아이들처럼 책을 덥석 집어 들고서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진짜로 떠날 거예요? 안 가면 안 돼요?' '그러지 마, 알리제. 조부님이 곤란해 하시잖니' 할아버지 루이수아가 샬레이안 본국을 떠나 머나먼 에오르제아 땅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 달 전쯤이었다. 곧 다가올 '제7재해'라는 위기에서 에오르제아를 구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알피노는 내심 섭섭했지만 사명을 다 하기로 굳게 결심한 할아버지 뜻을 헤아려 붙잡지는 않았다. 하지만 알리제와 푸르슈노는 그렇지 않았다. 알리제는 그저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고, 푸르슈노는 정치적 신념 때문에 반대하고 있었다. 현자 루이수아의 맏아들이자 쌍둥이의 아버지인 푸르슈노는 도시국가 '샬레이안'을 이끄는 '철학자 의회'에 속한 유력 의원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다른 주요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에 끼어드는 것을 내키지 않아 했다. 북방대국 '갈레말 제국'이 에오르제아 6대 도시 중 하나인 강호 '알라미고'를 침략했을 때에도 앞장서서 평화 교섭을 추진한 것이 푸르슈노와 동료들이었다. 그러나 이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이번에는 에오르제아에 구축했던 식민도시를 포기하자고 제안했다. 5년에 걸쳐 철저히 준비한 뒤 모든 도시 주민을 한꺼번에 북해 제도에 있는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대이동'을 실행에 옮겼다. 그리하여 제6성력 1562년, 저지 드라바니아 지방에 존재하던 식민도시 '샬레이안'은 하룻밤 사이에 텅 비게 되었다. 당시 한 살이던 알피노와 알리제도 아버지를 따라 본국으로 피난한 것이라고는 들었지만, 물론 둘 다 기억은 할 수 없었다. '아버님, 전쟁은 야만인이나 하는 짓입니다. 싸움을 피할 줄 알아야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이지요……. 우리 샬레이안 사람은 전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역사의 관찰자로 남아 있으면 됩니다. 지식을 쌓아 후세에 전하는 것…… 그것이 반복되어야만 인류는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알리제가 한 말에 맞장구 치듯 푸르슈노가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최근 한 달 동안 몇 번이나 오고 갔던 논쟁이었다. '푸르슈노, 그래도 내 마음은 변함없단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도 내 한 몸 걱정하며 돕지 않는 건 그저 게으름일 뿐이다. 그러면서 어찌 인류가 앞으로 나아간다 말할 수 있겠느냐. 물론 이 아이들을 싸움에 휘말리지 않게 하려는 네 마음도 잘 안다. 그러니 너를 꾸짖지도, 다른 사람들에게 에오르제아로 돌아가자는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각자가 지킬 수 있는 것을 지키면 될 뿐이다' 말리겠다는 사람이나 떠나겠다는 사람이나 같은 말만 되풀이하니 결론도 바뀌질 않았다. 알피노와 알리제는 '신동'이라 칭찬받을 만큼 영리한 아이들이었다. 에테르학이나 역사, 박물학을 깊이 공부해 불과 열한 살의 나이로 '샬레이안 마법대학'에 들어갔을 정도였다. 그런 알피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양쪽 의견 모두 조금씩은 타당하다고 여기면서도 할아버지의 의견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알피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분하지만 지금의 자신에게는 할아버지를 도울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리제는 달랐다. 어른스러운 척하는 오빠와는 달리 자신이 어린아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어린아이답게 감정적으로 할아버지와 떨어지기 싫었고,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오빠에게 화도 났다. 사이 좋던 쌍둥이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에오르제아로 떠나고 얼마 뒤,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그날 알피노와 알리제는 학교 친구들과 교수와 함께 마법대학 부속 천문대 안에 모여있었다. 서로 번갈아가며 거대 망원경을 통해 달의 위성 '달라가브'를 관측하고 있었다. '달라가브가 부서졌어!' 관측석에 앉아 있던 알리제가 외쳤다. 여러 장의 커다란 렌즈를 통해 바라본 카르테노의 하늘은 몹시도 흐릿했지만 위성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정말이야!? 떨어지지 않은 건가!' '그래! 할아버지가 해낸 거야!' 두 사람은 평소 알고 지내던 현자 '위리앙제'에게 할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때문에 할아버지 루이수아가 저 붉은 별 아래의 카르테노 평원에서 '달라가브'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작전이 성공했다며 기뻐하는 동생을 밀어낸 알피노는 망원경의 접안렌즈를 들여다보았다. 대기가 뒤틀리고 어마어마한 먼지가 뒤덮은 탓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동생이 말한 것처럼 '달라가브'는 제 모습을 잃어버린 듯했다. '그런데 왠지…… 느낌이 안 좋아. 에오르제아 하늘을 비추는 저 섬뜩한 빛은 대체 뭐지……'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머나먼 땅에는 빛줄기가 마치 빗물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 뒤로 한동안 흐트러진 에테르 때문에 링크셸 통신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된 것은 몇 주가 지난 후 도착한 위리앙제의 편지 덕분이었다. '달라가브'가 부서지며 그 안에서 검은 야만신이 나타나 에오르제아 곳곳을 불태웠고 루이수아가 이것을 막고자 직접 '신을 불러내는 의식'을 치르고 나서야 야만신이 사라졌다고 했다. 경악스러운 내용이 이어지던 그 편지는 이런 말로 끝나 있었다. '우리의 스승 루이수아가 빛이 되어 카르테노에서 사라지다' 두 사람은 울었다. 알피노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고 알리제는 소리 높여 통곡했다. 그리고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돛을 활짝 펼친 배가 미끄러지듯 서서히 항구를 떠나갔다. 알피노와 알리제는 갑판 위에 서서 멀어져 가는 항구에 서 있는 아버지 푸르슈노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자 루이수아의 피를 이어받은 쌍둥이가 이제 배 위에 서있었다. 두 사람은 당당히 마법대학을 졸업했고 샬레이안에서 성인이라 할 수 있는 열여섯 살이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 푸르슈노 역시 반대는 하면서도 이미 독립한 쌍둥이가 떠나겠다는 것을 억지로 막지는 않았다. '정말 배가 떠났구나……' 알피노는 5년 전 할아버지를 배웅했을 때와 같은 말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래…… 맞아. 우리가 가는 거야. 할아버지가 구하려 했던 에오르제아로!' 이번에는 알리제가 힘차게 대답했다. 알피노는 동생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장한 체구에 이제는 제법 어울리게 된 마도서를 허리에 단단히 매달고 있는 것은 똑같았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꼭 닮은 쌍둥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