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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판타지14 못다 한 이야기

칠흑의 반역자편에 등장한 인물들의 미처 말하지 못했던 특별한 이야기들을 공개합니다!

흑역사의 기만

쿠가네의 가장 큰 술집 ‘시오카제 정’의 한 모퉁이. 함께 있는 것이 기묘한 느낌마저 드는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다. “솔직하지 못하기는. 빨리 인정해, 나랑 같이 오길 잘했다고.”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녀석의 말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남자는 안주에 손을 뻗는다. 오징어를 햇빛에 말린 것인데 ‘오징어포’라고 하는 모양이다. “조용히 해, 꼬마. 애초에 네가 가져온 정보가 정확했더라면 이런 고생은 안 하잖아.” 불에 구운 오징어포를 물고 있는 남자, 에스티니앙이 노려보는 상대는 ‘인간’이 아니다. 흰 비늘을 가진 어린 용, 이름은 온 카이라 한다. 과거 ‘푸른 용기사’라 불리며 용 사냥을 계속해 왔던 남자와 어린 용이 어째서 이렇게 먼 동방까지 와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단 말인가. 다소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시간은 조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리트 전장에서 위기에 빠진 영웅을 구출해낸 에스티니앙은 혼수상태에 빠진 ‘친구’를 이슈가르드 진영으로 보낸 뒤, 그가 깨어나기 전에 자리를 떴다. 창을 휘두르는 것 말고는 별 재주도 없는 자신이 있어 봐야 도움도 안 될 터. 다시 전선으로 돌아갈까도 싶었지만, 듣자 하니 황태자 제노스가 철수하고 난 뒤 제국군의 움직임도 고착 상태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제 뭘 할까―― 그때 잠시 들른 커르다스 설원에서 그를 불러 세운 것이 온 카이였다. 묘하게 붙임성 있는 이 어린 용은 천 년 전에 자취를 감춘 아버지의 짝을 찾기 위해, 예의 그 영웅과 동방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에스티니앙과 함께 싸운 적도 있었다. 온 카이는 그를 보자마자 여행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이유인즉슨 지난 동방 여행을 하고 난 뒤 모험에 매력을 느껴, 함께 여행할 친구를 찾고 있었다는 거다. “어린애 뒤치다꺼리 할 일 있어?” 에스티니앙은 쌀쌀맞게 거절했다. 하지만 온 카이도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에스티니앙에게 나이를 묻고 나서 뽐내듯이 “난 그것보다 10배는 더 살았으니까 어린애 뒤치다꺼리는 내가 해야 할 거 같은데?”이라며 웃어대는 꼴이란. 계속 이런 식으로 끈질기게 구니 점차 머리가 지끈거린다. “푸른 용기사는 그만뒀지만, 오랜만에 용을 사냥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걸.” 반 농담으로 창을 들이밀었더니 온 카이는 너무나도 기쁜 표정으로 외쳤다. “바로 그거야!” 온 카이가 말하기를, 아버지의 짝을 찾아 헤매던 그 여행 도중에, 예로부터 동방에서 신으로 숭배되고 있는, ‘청룡’이라 불리는 용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이 생각났다고 한다. 그 용은 ‘동방의 수호신’으로 추앙 받고 있지만, 일부 지방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 사악한 존재’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청룡에 대한 소문을 확인해보자! 만약 사람을 잡아먹는 나쁜 용이라면 가만 놔둘 수는 없잖아!” 이렇게 해서 푸른 용기사와 어린 용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해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정보를 모아보니 ‘청룡’이라는 존재는 뱀의 화신일 뿐, 그들이 생각했던 드래곤과는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워낙 금전 사정에 신경을 안 쓰고 노잣돈을 모두 써버린 탓에 두 사람은 변변한 밥 한 끼도 먹을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술집에서 술과 안주를 먹고 있느냐면, 술집 주인이 온 카이를 보더니 ‘운수 좋은 동물’이라고 기뻐하며 가게에 손님을 끌어다 주는 조건으로 식사와 침상을 제공해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빨리! 나랑 같이 오길 잘했다고 말 안 하면 오징어포를 안 구워줄 거야!” 시건방진 어린 용의 말을 따라야 하는 건 부아가 치미는 일이었지만 안주도 없이 쓴 청주를 마시는 건 더 고역이다. “알았으니까 어서 불이나 뿜어봐.” 오징어포를 찢어서 내밀자 온 카이는 불꽃 숨을 내뿜었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면서 오징어포가 노르스름하게 변한다. 자, 한 입 더. 가게에 새로운 손님이 들어온 건 그때였다. “어서 오십시오~!” 온 카이가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자 에스티니앙도 슬쩍 입 모양을 맞춘다. “어서 오십시……” “여기 있었군용……!” 분홍색 동방 의상을 입은 여성, 타타루 타루가 외쳤다. 그 옆에 있던 특이한 후드를 쓴 여성, 쿠루루 발데시온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터져나올 듯한 웃음을, 어떻게든 겨우 참으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용기사단에서 물러났다고는 들었지만, 술집 점원으로 재취업한 줄은 몰랐네.” 되받아칠 말이 없다. 그뿐 아니라 안 좋은 예감이 든다.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다. “그럼 난 가볼게, 온 카이. 이 가게에 있으면 굶어 죽진 않을 거야. 잘 지내라!” 에스티니앙은 갑주 한 벌을 담은 마대자루를 흉흉한 창 끝에 걸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뚫려 있는 위층으로 훌쩍 뛰어올라 손님 자리에 가볍게 착지하고는 곧장 출구로 향했다. 그리고 예술 공연쯤으로 착각한 취객들의 박수갈채를 뒤로 한 채 쿠가네의 밤거리를 빠져나갔다. 목적지는 쿠가네 대교. 다리 건너편은 이방인의 출입이 규제되어 있는 시슈 지역이니 여기로 도망쳤을 거란 생각은 못할 것이다. 아니 그런데, 술 기운이나 좀 깨볼까 싶어 밤의 대교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좀 전의 그 두 사람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쪽은 이 허가증이 없으면 못 들어갈 텐데용?” 타타루가 도장이 찍힌 문서를 들고 팔랑팔랑 흔들면서 걸어온다. 괜히 인맥 넓기로 유명한 ‘새벽’의 금고지기가 아니군. 정식 입국허가증까지 손에 넣은 모양이다.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야. 여기로 도망친 것을 대체 어떻게 알았지? “쳇…….” 즉각 뒤로 물러나 해협을 왕복하는 선박의 돛대로 뛰어올랐다. 귀찮은 일은 정말이지 딱 질색이다. 이렇게 된 거 오기로라도 도망쳐주지. 그가 다다른 곳은 항구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쿠가네 성의 지붕 위였다. 제아무리 ‘새벽’이라도 여기까지는 쫓아올 수 없겠지. 하지만 몇 분 뒤, 그는 다시 타타루와 쿠루루의 모습을 보게 된다. 초롱을 손에 든 적성조 병사의 안내를 받으며 성곽을 올라와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저 녀석들, 내가 있는 곳을 어떻게…… 뭔가 특수 장치라도 있는 건가?” 본고장 코우슈산 청주로 인한 취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성격 때문일까. 쫓기면 쫓길수록 더 오기가 생긴다. 서서히 다가오는 초롱 불빛과 멀어지기 위해 에스티니앙은 계단 밑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여기서 아침까지만 버티면 출항할 수 있어.” 어느덧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그야말로 새벽녘을 맞으려 하고 있었다. 해가 뜨면 그가 은밀히 탄 운송선 “쿠로보로마루’는 쿠가네를 떠날 것이다. “도망쳐도 소용없어용……!”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에스티니앙 눈에 들어온 건 역시 그 두 사람이었다. 이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머리를 굴리고 있자니 갑자기 타타루 옆에 있는 여성이 머리를 짚으며 휘청거렸다. “괘, 괜찮으세용? 쿠루루 님!” 당황한 타타루가 털썩 무릎을 꿇은 쿠루루를 부른다. 밤새 술래잡기를 한 탓에 피로가 쌓인 것인가, 그럼 내게 원인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 천하의 에스티니앙도 도망치는 걸 잊고 그녀를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을 뻔한 그때, 또다시 쿠루루가 겨우 억누르고 있던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봤어…… 푸른 용기사, 에스티니앙……. 당신…… 상당히…… 풉……” 이쪽을 보려던 쿠루루가 시선을 살짝 피하더니 배를 움켜쥐고 어깨까지 떨며 웃는 게 아닌가. “쿠루루 님, 에스티니앙 님의 과거를 보신 건가용?” 등골이 서늘해진다는 게 바로 이런 느낌인가. ‘초월하는 힘’이라 불리는 요상한 능력을 가진 자들은 곧잘 대면한 인물의 과거를 본다고 한다. 나 또한 그 영웅, 그리고 이젤과 여행하면서 몇 번 그 현장에 함께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무엇을 봤단 말인가. 저 반응은 설마―― 짐작 가는 것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남이 봐서는 곤란한 과거를 보인 것만은 확실하다. “후우…… 내가 뭘 봤고 뭘 안 봤는지, 일단 지금은 말하지 않을게. 그러니 우리 얘기를 좀 들어주지 않겠어?” 에스티니앙은 조용히 어깨를 으쓱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쿠루루의 침묵을 조건으로 ‘새벽’의 일을 맡게 되었다. 영웅과 알피노가 그 존재를 확인한 갈레말 제국의 비밀 병기 ‘검은 장미’에 대해 조사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파기하라는 임무다. 물론 그 병기를 방치한다면, 제국군과 대치 중인 아이메리크와 조국의 기사들에게도 위험이 미칠 것이다. 그러니 창을 휘두르는 것 말고는 별 재주도 없는 자신에게 딱 맞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몇 시간 뒤, 그는 근동의 섬나라 라자한으로 향하는 무역선의 갑판에 서 있었다. 허리춤에 매단 가죽 자루에는 타타루가 동방 전설에 얽힌 모험을 하면서 손에 넣게 됐다는 금화가 가득 담겨 있다. 활동 경비라고 한다. “이것 참, 이래저래 귀찮은 여행이 될 것 같군.” 에스티니앙은 온 카이가 선물로 건네준 오징어포를 안주머니에서 꺼내 입에 물었다. 역시 용이 구워준 오징어포는 별미다.
한편 그 무렵 쿠가네의 ‘시오카제 정’에서는 어린 용과 두 명의 라라펠이 식탁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과거를 보신 거예용?” 청주 때문인지 살짝 볼이 붉어진 타타루가 묻는다. 그러자 쿠루루가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해처럼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난 그의 과거를 봤다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이른 아침의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술집 안에 한바탕 웃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