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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의 이슈가르드

못다 한 이야기

파이널판타지14: 창천의 이슈가르드편에 등장한 인물들의 뜻밖의 만남, 그리고 스토리에서 미처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담은 특별한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나는 포르탕 가의 시종이다. 근무한 지는 5년 정도 되어간다. 신입들은 나를 그럭저럭 좋은 선배라고 생각하며 따르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주인들에게 이름까진 기억되지 못하는 존재이다. 포르탕 가에는 족히 100명이 넘는 시종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나는 빨리 지명을 받는 시종이 되고 싶어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무시무시했던 성도 결전...... 사룡 니드호그와의 싸움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의 일이다. 공화제 이행으로 성도 안은 그때까지도 술렁였다. 포르탕 가 저택에서도 변혁의 바람이 강하게 불어 특히 정보 교환의 장인 회식 자리가 매일 끊이지 않았다. 백작 지위를 이어받은 아르투아렐 님에게 인사를 하러 오는 자, 일선에서 물러난 에드몽 님을 방문하러 오는 자, 긴장한 서민원의 의원들까지 줄줄이 저택을 방문했다. 그렇게 떠들썩한 와중에 복도에서 마주친 집사 피르미안 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부탁이 있습니다. 다른 시종들은 바빠서 움직일 수 없으니, 책임이 막중한 일이지만 당신에게 맡겨도 될까요?” 물론이라며 야무지게 대답하니, 피르미안 씨는 간결하게 일의 내용을 지시했다. 새 의회가 아르투아렐 님에게 영지권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용머리 전진기지 서류가 없는 모양이었다. 지시 내용은 현지에서 보관 중일 테니 즉시 가서 회수해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다. 지금 출발해도 저녁 무렵에는 용머리 전진기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내 시야에 낯익은 인물이 스쳐갔다. 용시전쟁을 종결로 이끈 영웅....... 모험가이자, 포르탕 가의 손님이기도 한 그 사람이다. 나도 늘 인사는 하고 싶었지만 일개 시종의 몸으로는 황송한 일인지라 멀찌감치서 존경의 눈길을 보내는 게 고작이다. “피르미안 씨, 저 분은 또 어딜 가시나요?” “글쎄요....... 우리는 알 수 없는 사정이 있으시겠죠. 단, 방금 전에 우리 집사와 옛날 얘기를 나눈 모양입니다. 어쩌면 저 분 나름대로 추억 여행을 시작하신지도 모르지요.” 그렇지, 영웅쯤 되면 추억할 만한 일도 많을 터이다. 마음대로 추측하고 나는 임무 수행을 위해 자리를 떠났다.

용머리 전진기지에는 예정대로 도착했다. 현지의 기사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서류를 찾기 시작했지만...... 고생길의 시작이었다. 책임자였던 오르슈팡 님은 지휘관 책상 서랍에 온갖 서류를 실로 호쾌하게 방치해놓았지만, 찾으려는 권리서만이 그곳에 없었다. 막사나 부지 내의 눈에 띄는 곳을 찾아봤지만, 서류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본가에 연락하여, 며칠 동안 전진기지에 머물며 샅샅이 집을 뒤지게 되었다. 탐색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난 심야에 나는 홀로 오르슈팡 님의 개인실에서 서류를 찾고 있었다. 돌아가신 주인님의 방에 손을 대자니 꺼림칙했지만, 탐색을 반복하는 동안 초조함이 앞섰다. 불안 불안한 램프 불빛을 비추며,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책상 서랍 안쪽을 뒤적이다가, 문득 서랍 바닥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기대감에 두근거리며 첫 번 째 서랍 바닥을 떼어냈다. 거기에는 서류 한 묶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 이거다......!” 곧바로 서류 묶음을 꺼내어 내용을 훑어본다. ...... 틀림없이 찾고 있던 물건이다.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는데 손에서 봉투 하나가 떨어졌다. 서류 사이에 끼워져 있었던 모양이다. 황급히 주워서 확인해 보았지만, 서류에는 받는 이도 쓰여 있지 않거니와 봉해져 있지도 않았다. 이것도 관련 서류일지 모르니, 만약을 위해 내용물을 꺼내서 확인했다. ......나는 숨을 삼켰다. 그것은 편지였다. 돌아가신 오르슈팡 님이 한 명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희미하게 흔들리는 빛 속에서 편지의 글자가, 지난 날의 추억이 가만히 떠올랐다. 친애하는 친구에게 넌 여전히 잘 지내고 있을까? 드래곤족이 성도를 다시 습격할 거라는 예측....... 그 때문에 너와 알피노 공이 서쪽으로 여행을 떠난 지 며칠이 지났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너에게 이 편지가 닿을 거라고도, 보내려고도 생각하지 않아. 즉, 혼잣말을 적어뒀을 뿐이야. 그래도 머나먼 하늘을 바라보며 네가 무사히 여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한 번쯤은 토해내지 않고는 못 배기겠어. 만약에 네가 이 편지를 보게 된다면, 뭐, 그렇게 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만 부탁할게. 자. 너는 이슈가르드에 초대 받아서 행복했어? 아니면 하는 수 없이 도망쳐 온 곳에서 또 누군가의 싸움에 휘말리게 되어 짜증이 났어? 비록 그렇다고 할지라도 너는 싸워 이겨낼 거라고 쉬이 상상이 되어서 쓴웃음이 나. 나는 네가 이슈가르드에 와줘서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야. 너의 실로 듬직하고 훌륭한 모험가 기질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서 즐겁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믿음직한 친구와 같은 곳을 목표로 함께 싸울 수 있어서지. 짜릿해! 너희가 울다하에서 눈의 집으로 도망쳐 온 날. ‘새벽’이 등불을 꺼뜨리지 않으려 한 것처럼, 나 또한 너라는 친구를 썩히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너희를 이슈가르드에 초대하려고, 포르탕 백작에게...... 아버지에게 직접 여쭈러 갔지.

......고백하자면, 난 아버지가 거북해. 원망하지는 않아. 어머니도, 올바른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처지를 견딜 수 없게 되어서 나를 두고 사라지셨을 뿐이야. 아버지는 어머니도 나도 사랑해 주셨어. 다만, 서로 그것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나는 포르탕 가를 따르는 기사로서만 그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었지. 너를 도와달라고 부탁 드리러 갔을 때, 아버지는 처음엔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야. 개척단을 그렇게나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아버지도, 지명 수배 중인 인물을 받아들이는 건 가문을 책임지는 입장으로서 걱정스러웠겠지. 포기하지 않고 간청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왜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냐고 물으셨지. 난 너와의 추억을 솔직하게 얘기했어. 몇 개 안 되지만, 하나 하나가 나에게는 놀라움과 빛으로 가득 찬 더없이 소중한 이야기였지. 내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친구를 구하고 싶은지를 전하려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으니까. 생각해 보니, 아버지와 그렇게 오래 이야기 해본 적이 없어. 이야기를 마친 나를 잠시 바라보던 아버지는, 온화한 눈빛으로 “내일까지 생각해 보마”라고 말씀하셨어. 그리고 그 다음 날, 정식으로 후견인이 되겠다고 대답해 주셨지. 이후의 일은 너도 잘 알 거야. 덕분에 나는 전보다 본가에 들르는 게 아주 조금 즐거워졌어. 그렇지만 네가 또 성가신 역할을 떠맡아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자리를 비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널 조국의 다툼에 끌어들인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해. 그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다면 언젠가 술이라도 한 잔 하며 회포를 풀도록 하지. 그래도, 친구여. 나는 의심의 여지 없이 믿고 있어. 너는 어떠한 고난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건 이번 여행뿐만이 아니야. 앞으로 네가 어디를 향하든 변함 없을 거야. 혼자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고 하더라도, 네가 가려고 하는 한, 분명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주겠지. 내가 지금 그렇게 하고 싶은 것처럼. 그리고 그 고난 너머에는 반드시 새로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것을 발견했을 때에는 꼭 활짝 웃어줘. 네가 최고의 여행길을 걷기를....... 무사하길 빌어. ― 오르슈팡 그레이스톤

다음 날, 나는 오르슈팡 님의 편지를 가지고 눈길을 달려갔다. 성도로 돌아가기 직전에 영웅님이...... 그분이 용머리 전진기지에 들렀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전진기지에서 나와 북쪽으로 향한 모양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저택에 근무하는 나도 잘 안다. 몇 번이고 눈에 발이 빠지면서도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 분은 분명 지금까지의 여행을 회상하고 있었던 거다. 그렇다면 그 여행이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이 편지를 건네어 전해드려야 한다......! 저 멀리 그 분의 등이 보이고 나서야, 난 겨우 속도를 늦췄다.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려다가......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 분은 오르슈팡 님의 위령비를 그저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는데도 어째서인지 미소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편지의 내용은 이미 다 알고 계신지도 모른다. 사실이 어떻든지 간에 여기에 담긴 오르슈팡 님의 마음은 이미 저 분의 가슴 속에 깃들어 있다....... 이상하게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편지를 쥔 손에서 힘이 살짝 빠졌을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내가 “앗!”하고 소리를 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편지는 이 손을 빠져나가 설원에서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이끌려 가듯이, 편지는 높이 높이 날아올라...... 이윽고 하늘로 녹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