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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 한겨울밤의 꿈

번호 900
시바 | 도끼술사 | Lv.1
16-08-23 01:05 조회 9686

 

배경음악 : Krewella-Human

 

* 본 소설의 내용엔 다수의 스포일러성 내용이 있으므로 주의바랍니다.

 

 

[살....려...줘......]

 

아무것도 없는 암흑 속에서 비탄에 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모르는 목소리이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

 

[도....와.....줘.....]

 

그 목소리는 내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내가 그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상처투성인 한 여자아이가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 난 무심코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잡은 여자아이는 활짝 웃더니.....

 

[저주한다. 빛의 전사여.]

 

.......지옥에서 올라온 듯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놀란 나는 여자아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적반하장...... 인간이여, 그대들이 전쟁을 일으켰노라.]

 

여자아이는 어느새 내가 쓰러뜨렸던 야만신, 이프리트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아니, 이프리트 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쓰러뜨려왔던 수많은 야만신들과 야만족, 드래곤족의 모습으로 시시각각 변하였다.

 

[인간이여, 너희들이 우리를 배신하였고 우리의 동족을 살해했노라!]

[증오한다, 저주한다! 우리의 일상을, 행복을 뺏어간 그대를!]

 

원한과 증오에 찬 목소리들이 나를 비난한다. 내가 그동안 세상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목숨을 앗아간 이들의 목소리가 나를 비난한다.

 

[왜, 왜 우리를 죽였느냐?! 왜 우리의 일상을 부수고 소중한 이들을 앗아갔느냐? 무엇을 위해 그랬느냐?]

 

아니야. 내가 그런게 아니야. 내가 원해서 그런게 아니야.

 

[왜, 왜!]

 

수많은 야만족들이 물어온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영역권에서 살아가길 바랐을 뿐이다. 그걸 침범한 것은 인간이다. 그들은 살기 위해 자신들의 신에게 소망하였다. 단지 그 뿐이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였더냐? 그저, 살아가길 바랬을 뿐이다! 그것이 잘못이더냐?]

 

아니다. ''새벽''과 나는 『에오르제아를 위해서』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걸고 그들을 ''토벌''하였지만, 그건 우리 인간들의 무사를 위하여였을 뿐이다. 내게는 그들을 심판할 권리따윈 없었다. 그러나..... 난 그들을 ''심판''하였다. 

 

[이 에오르제아를 구해주세요.]

 

그만, 그만! 도대체, 도대체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그런걸 요구하는 거지? 마더 크리스탈이여, 내게 그럴 의무가 있는가? 난 다른 이들과 똑같은 모험가였을 뿐이다. 그래, 단지 좀 뛰어난 모험가였을 뿐이야. 그런 내가, 왜 희생을 해 세상을 구해야만 하지? 난 그저 내게 소중했던 걸 지키고자 할 뿐이야. 왜.... 다른 이들도 똑같이 원하는 걸 원했을 뿐인데 나는.......

 

[왜 그러나, 모험가여? 내게 당당하게 맞섰을 때의 모습은 어디갔는가?]

 

가이우스...... 그는 여전히 투구를 쓰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명백하게 비웃음이 담긴 조소를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너는 세상을 구했으나 그 손에 남은 건 무엇이냐? 그저 피묻은 두 손뿐이지 않느냐.]

 

크크큭...... 그의 비웃음이 어둠 속에 울려퍼진다. 나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허나 그것 또한 모두 그대의 선택에 따른 결과일 뿐이지.]

"닥쳐!!"

 

내 손에 있던 단검이 가이우스의 목을 가른다. 그의 목은 힘없이 떨어졌지만 그의 비웃음 소리는 여전히 내 귓가에 들려왔다.

 

[그래, 스스로의 선택에 놀아난 기분은 어떠한가?]

"닥쳐, 닥쳐, 닥치라고!!!"

 

크흐흐... 흐하하하하하.......

 

끊임없이 울려퍼지는 차가운 조소에 나는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어이, 아스카! 뭐하고 있는건가?"

 

문득 들려온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에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주역이 이런데에 혼자 있어서 어쩌자는겐가? 자, 다들 기다리니 어서 가지."

 

아름다운 은발에 보기만해도 시원해지는 청색의 눈동자...... 오르슈팡이었다.

 

"음? 무슨 일인가? 그대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니, 드문 일이군."

"오르....슈팡?"

 

내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른다. 분명..... 분명 당신은.......

 

"아스카? 왜 우는거지? 내가 뭘 한건가?"

 

오르슈팡은 당황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후후.... 그래, 당신은 평소 대담한 발언을 하며 능숙해보였지만 이럴 때는 꼭 숙맥처럼 굴었지. 오르슈팡, 내 가장 소중한 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난 그런 그를 보며 여전히 물기 있는 눈으로 웃어보였다.

 

"아니... 아니에요. 그저......"

 

난 뒷말을 잇지 못하였다. 분명 당신은.... 그 날...... 그렇게 아무말 없이 서로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우리를 누군가 불렀다.

 

"오르슈팡. 그녀를 데려온다고 해놓고 뭐하는 건가? 아무리 자기 여자라해도 이럴때까지 노닥거릴 필요가 있나? 다들 기다리고 있잖은가."

 

자기...... 여자? 이번엔 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오르슈팡을 올려다보았다. 오르슈팡은 허허롭게 웃더니 우리에게 말을 건 남자, 신전기사단 총장 아이메리크 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메리크 경..... 아스카한테 실례되는 말하지 마십시오. 제 여자라니요."

 

하지만 아이메리크 경은 음흉하게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리인가? 다 공인된 것을. 이번에 교황청이 내부 수리중이라 검은장막 숲에 있는 대성당에서 식을 올리기로 했으면서. 카느 에 공이 얼마나 기뻐했는데."

 

그 말에 오르슈팡의 얼굴이 드물게 붉어진다. 시...식이라고? 언약식을 말하는 건가...? 하지만 난 그런 기억..... 아니, 무엇보다 오르슈팡은...!!!

 

"아스카. 왜 이리 안오나 했더니 여기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군."

"알피노....."

 

알피노는 소년답지 않은 의젓한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띄우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에오르제아 도시 국가 동맹에 이슈가르드가 합류하는 걸 축하하는 연회가 열리는데, 그 자리의 주역인 자네가 안오면 어떻게 하는가? 멜위브 제독님도, 카느 에 공도 라우반 공도 다 기다리고 있네. 어서 가야지."

"나나모 여왕님은요....?"

"안타깝지만 오시진 못하였네. 의식도 깨어나셨지만 아직 이곳까지 오실 정도로 회복된건 아닌 모양이야. 그래도 라우반 공이 참석해주셨으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

"아얏! 무슨 짓입니까, 에스티니앙 공!"

"꼬맹이, 여전히 귀엽지 않은 말투를 쓰는구나. 꼬맹이면 꼬맹이다운 말투를 쓰라고."

"윽... 누가 꼬맹이라고.....!!"

 

대차게 알피노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에스티니앙은 평소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 다르게 이슈가르드의 귀족들이 걸치는 옷을 입고 있었다. 에스티니앙? 어떻게 그도 여기 있는거지? 그것도 저런 차림으로....... 드물게 맨 얼굴을 드러낸 그는 나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이, 아스카. 얼른 가자. 그래야 빨리빨리 네 사랑하는 신랑하고 식을 올릴 수 있지."

"!!!"

 

그의 농담에 내 얼굴이 새빨개진다. 그것을 보고 유쾌하게 웃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만 좀 놀리라고 화를 낸 오르슈팡은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내 손을 잡고 연회가 열리고 있다는 신전기사단 본부로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어머, 아이메리크 경."

"이거 죄송합니다, 카느 에 공. 라우반 공. 아스카를 데리러 갔던 오르슈팡이......"

"윽! 그만 말해요, 아이메리크 경!"

 

엄한 말을 할 것 같은 느낌에 나는 급히 아이메리크 경의 말을 막았다. 하지만 카느 에님은 다 안다는 표정으로 살며시 웃어보였다. 으윽....... 정말 저 사람에겐 못 당하겠어......

 

"자, 오늘 연회의 주인공이자 세상을 다시 한 번 구해주고 우리 모두를 다시 하나로 묶어준 영웅인 아스카입니다!"

 

와아아아아

짝짝짝

 

연회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기쁜듯이 웃으며 박수를 친다. 그들은 상냥한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짧게 내 소개와 인사가 끝나고 연회가 시작되자 아이메리크 경이 내게 다가와 작게 말했다.

 

"연회장소가 이렇게 협소한 것은 이해해주게. 원래는 포르탕 가문의 저택이나 교황청에서 하려고 했는데, 포르탕 가문은 갑자기 사정이 생겼다 그러고, 교황청은 알다시피 다 부서지지 않았는가? 아직 그 보수공사가 안 끝나서 거기로 갈 순 없었네."

 

그럴 만하다. 교황청에선 나와 창천기사들이 격렬한 전투를 벌였었다. 아직 그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리라. 나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메리크 경은 각 국가 수장들과 할말이 있는지 그들이 있는 자리로 갔다. 혼자 남아 포도주를 홀짝이는 내게 오르슈팡이 다가왔다.

 

"고생했다, 아스카."

"아.... 응."

 

아까 했던 얘기 때문일까. 우리 사이는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지 몇 분, 오르슈팡은 드물게 살짝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언약식에 관한건.... 내...내가 카....카느 에 공하고 멋대로 얘기를 지...진행한 거다. 넌 모험가니까. 언제 떠날지 몰라서 그런거니..... 혹시라도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

"그.... 취...소를...."

 

화악

 

"......!"

"내가,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아니..."


뭐라 말하려는 오르슈팡을 확 끌어안으면서 묻자 오르슈팡은 당황한 듯 보였다.


"좋아. 당신과 계속 함께할 수 있으니까."

"......."


오르슈팡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으려는 순간, 우리는 주변이 조용해진 것을 깨달았다. 오르슈팡은 흠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숨죽인 채 우리를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잠깐!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오르슈팡은 허둥지둥했지만 나는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와 눈을 마주친 이들은 한번씩 웃으면서 자신의 술잔을 살짝 들어올렸다. 카느 에님, 멜위브 제독님, 라우반 공, 알피노, 야슈톨라, 시드, 타타루, 에스티니앙, 아이메리크, 루키아, 프란셀...... 그동안 만나왔던 이들이 웃으며 축복해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멀리서 이젤과 ''새벽''의 현자들의 모습이 보였을때, 난 깨달았다.


''이것은 꿈이구나.''


내가 그려왔던, 최고의 이상으로서의 마지막. 이것은 반드시 꿈일 것이다. 아니면 또다른 세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지. 오르슈팡도, 이젤도, 에스티니앙도, ''새벽''의 현자들도....... 이 자리에 본래는 없어야 하는 인물들이기에. 누가 이런 꿈을 보여주는 것일까. 나 자신의 의식일까, 아니면 마더 크리스탈, 하이델린의 마지막 자비인걸까. 어느 쪽이던 상관없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이들과 맞이하는 결말의 이야기.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오직 이상으로서만 존재하는 결말.


''꿈에서라도..... 당신과 함께라면.....''


평생 깨고 싶지 않다.


"잠깐, 아스카?! 자....잠깐 기다....읍!"


오오오오오


다른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나는 오르슈팡에게 입을 맞추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나를 감싼다. 한겨울밤의 꿈은, 너무나도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


"........."


눈을 뜨자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내 얼굴에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역시.... 꿈이었네.


"오르슈팡....."


그와 마지막에 나눈 입맞춤의 느낌이 아직 입술에 남아있는 듯 했다. 문득 그의 위령비가 있는 곳이 떠올랐다. 찾아가야지. 찾아가서, 오늘 꾼 그 꿈을 이야기해줘야지. 과연 즐거워해줄까? 



눈이 약하게 휘날려서 그런지 이슈가르드의 모습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평소 오르슈팡은 여기서 이슈가르드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지.


"오르슈팡, 나 왔어요."


물론 대답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난 그가 대답해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이걸 돌려주려고 왔어요."


난 천천히 등 뒤에서 오르슈팡의 방패를 꺼내들었다. 깨진 포르탕 가문의 방패. 오르슈팡이 항상 들고다디던 그 방패. 날 지켜주었던 그 방패.

 

"이건.... 나보다는 당신에게 더 어울리는 방패에요."

 

항상 한손에 방패를 들고 유쾌하게 웃어보이던 그의 얼굴이 생각난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한방울 떨어져 눈밭을 적신다.

 

"미안해요..... 당신은 웃는 얼굴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해주었지만....."

 

뚝뚝

 

"오늘은.... 한번만.... 울게요."

 

앞으로는 울지 않을 것이다. 그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 나의 눈물을 보고 싶은 사람따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나의 비명을 듣고 싶은 사람도 없을 테니까. 그 누구에게도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만큼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당신은 절 인간으로 봐준 유일한 사람이에요."

 

그 누구도 날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지 않았다. 항상 영웅이라 추앙하지만, 나는 그렇기에 외로웠다.

 

"사람들은 말하죠."

 

당신은 영웅이라고. 우리를 구해줄 단 한명의 영웅이라고.

 

"하지만 저도 한명의 사람일 뿐인걸요........"

 

그렇기에 아파한다.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이를 잃어 나는 슬퍼한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 슬퍼한다.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울게요. 당신이라면.... 이해해주겠죠?"

 

그 순간, 바람이 불어 나의 뺨을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물론이다, 나의 맹우여.]

 

그렇게 말하는 오르슈팡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그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나는 다시 한 번 맹세한다.

 

 

나의 맹우여, 나의 사랑하는 이여.

오늘 그대에게 받은 의지를 가지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아아, 나의 사랑하는 이여.

그대는 여기서 쉬고 있기를.

 

언젠가,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오면

그 때 나 다시 찾아오리.

 

아아, 떨리는 손가락으로 맹세했던 미래로

그대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할때까지........


-

 

음,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보니 좀...... 이상한 부분도 있는것 같고....

 

유투브에서 노래를 듣던중, Human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는데 가사가 꼭 이 주인공이 외치지 못한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 이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단편의 주인공은 여성으로 설정되어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의 구도는 뭐 대충 이런식이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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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혼 (16-08-24 15:31)
시바 | 궁술사 | Lv.60
오르슈팡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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